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또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 사람이
없는 것 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다.

인간이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


신영복[감옥으로부터의 사색]中


우리들이 잊고 있는 것은 아무리 담장을 높이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함께 햇빛을 나누며,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화폐가 중간에 들면, 쌀이 남고 소금이 부족한 사람과
소금이 남고 쌀이 부족한 사람이 서로 만나지 않더라도
교환이 이루어 집니다.

천 갈래, 만 갈래 분업과 거대한 조직,
그리고 거기서 생겨나는 물신성(物神性)은
사람들의 만남을 멀리 떼어놓기 때문에
'함께' 살아간다는 뜻을 깨닫기 어렵게 합니다.

같은 이해(利害), 같은 운명으로 연대된 '한 배 탄 마음'은
'나무도 보고 숲도 보는' 지혜이며,
한 포기 미나리아제비나 보잘 것 없는 개똥벌레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열린 사람'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되라고 한다면 나는 산봉우리의 낙락장송(落落長松)보다
수많은 나무들이 합창하는 숲 속에 서고 싶습니다.

한 알의 물방울이 되라고 한다면 저는 단연 바다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지막한 동네에서
비슷한 말투, 비슷한 욕심,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싶습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中에서,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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