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팔에 맨발로 돌아다녀도 추운지 모르겠다.
정신이 이상해진거든지.
오늘 아침도 차가운 화장실 세면대 물은 잠들어 있는 내 정신을 번쩍 깨워준다.
눈이 부어서 왼쪽눈에 쌍꺼풀이 생겼다.
눈을 한참 비비다, 다시 책상에 앉는다.
지금까지 내가 뭘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하루에도 생각이 수십번도 더 바뀐다.
사람 마음 아니랄까봐.
자꾸 독한 담배에 손이 더 간다.
답답한 마음에 잔뜩 쌓여 있는 문서들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출력 해뒀던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그리고 법정 스님의 설명이 달려 있는 글이 손에 잡힌다.
가만히 의자에 기대어 읽어 내려갔다.
요즘 나보고 들으라고 토닥여 주는 글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너무 서두르지 말자.
지금의 따뜻한 가슴을 잃어버리지 말자.
하루 하루 쌓아가다보면 닿지 못할 곳이 없다.
설령 내 생에 닿지 못하더라도,
다음 주자들이 조금 더 편하게 닿을 수 있다면,
보잘것 없는 징검다리가 될지라도.
거기까지가 내 그릇이겠지.
남들이 휭-하니 앞서간다고 조바심 내지 말고,
내 속도에 맞게 한 걸음씩 걸어가자.
마음 속을 잘 토닥거리자.
오늘 하루도 조금씩 크고 있으니까, 단단해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지금 내 자리에서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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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첫째,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둘째,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제 잘난 체하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하셨느니라.
셋째, 공부하는 데에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하셨느니라.
넷째, 수행하는 데에 마(魔)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 데에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하셨느니라.
다섯째, 일을 계획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풀리면 뜻이 경솔해지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많은 세월을 두고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여섯째,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한다면 의리를 상하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순결로써 사귐을 깊게 하라'하셨느니라.
일곱째,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진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 무리를 이루라'하셨느니라.
여덟째, 공덕을 베풀 때에는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게 되면 불순한 생각이 움튼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덕 베푼 것을 헌 신처럼 버리라'하셨느니라.
아홉째,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하셨느니라.
열째, 억울함을 당할지라도 굳이 변명하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변명하다 보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의 문을 삼으라'하셨느니라.